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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을 풀어주는 자

“저 스승님, 질문이 있습니다.”

생도 이담영1의 그 한 마디가 모든 일의 발단이었다.

“스승님이라고 부르지 말게.”

그 한 마디에 대한 답이, 이리도 냉정하고 야속한 말투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저, 하지만 다른 분들께서는….”

담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그럴 만한 것이, 그는 이제 막 입속한 지 며칠 된 관상감의 생도였고, 그의 앞에 있는 삼력관 ‘방정식’은 생도나 총민을 가르치는 종 6품 교수직을 겸했으며, 그것이 설령 2년 반짜리 짧은 체아직이라 하더라도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생도나 총민은 관직으로 부르기보다는 으레 스승으로 대우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든, 지금 자네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

“…이 생도.”

정식이 나지막한, 하지만 이전보다 힘 있는 목소리로 담영을 불렀다.

“정신 차리게 이 사람아, 자네가 입속하면서 내건 조건이 무엇인지 잊었는가.”

“…기억합니다. 그러나 무슨 말씀인지 이해는 잘….”

담영의 목소리는 거의 떨리고 있었다. 정식은 낮게 혀를 찼다.

“자네는 그냥 숨어서 생도 생활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그건 그냥 과거 볼 자격만 달라는 거였네.”

잡과 중 하나인 음양과에 응시하려면, 천문학을 전공하려는 사람은 관상감의 천문학 생도일 조건이 붙어 있다. 즉, 그렇게 하려면 일찍부터 관상감 입속자 명단에 올라 있어야 한다. 명단에 이미 올라 있는 마흔 명의 생도가 함께 공부하고 함께 경쟁하다가, 다같이 시험을 보고 그 중 매 식년마다 다섯 명을 추려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담영이 입속하면서, 생도 정원은 일시적으로 마흔 명에서 서른아홉 명으로 줄어들었다.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한 자리가 비게 된 거라지만, 사실 그런 선례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라서 바로 인원을 감축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담영은 그런 상황에서 정원 외 인원으로 관상감에 출입하는 것, 생도로서 일체의 교육을 받는 것이 허용되었고, 이런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이 일을 의아하게 여겼다.

“요는, 편의상 어떻게 불리든 자네는 아직 관상감 생도가 아니란 말일세.”

“…압니다. 또 이것이 정도가 아니니, 다들 불편하게 여길 거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제가 스승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모두에게 인지시켜 불편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담영은 울먹이며 답했다.

“…그래. 다른 사람이라면 그 말, 받아들이겠네.”

여기까지는, 누구나 객관적으로 이해할만한 공적인 영역.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네를 평생,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

공적인 영역에 따라붙는 것은 바로 정식 개인의 이야기였다.

“자네가 오기 전에 딱 그 자리에 있던 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네. 내가 굉장히 걱정했고 안쓰러워하던…. 녀석이었어.”

“….”

“그런데 자네는 그날, 바로 그날 찾아와서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그렇다면 그 자리에 자길 받아 달라고 청했지. 그 표정이, 그 말투가, 잊혀지지가 않네.”

“…그게.”

담영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그러면서도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변명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방향으로 말해야 정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지 알 수 없는 탓이었다.

“이해되는가? 표정을 보니 아닌 듯 한데. 그나마 그 당시에는 아아, 그 정도로 간절한 녀석인가 보다 하고 넘기려 했는데….”

“…그렇다면 된 것 아닙니까?”

담영이 여전히 소매로 눈을 가린 채 되묻자 정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생도장인 서 생도에게 어째서 보조역이 붙어 있는지 아는가?”

“…그건, 생도장을 하시는 규빈2이 형님께선 성적은 높지만 그리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고, 반대로 보조를 하시는 일석3이 형님께선 나이가….”

“그렇게들 말하던가? …정말 다들 착해빠졌구만. 죽은 사람을 대신해 들어왔다는 찜찜함이든… 혹은 죄책감을 덜어 주려 일부러 거짓말을 하다니, 정작 제 앞에 있는 녀석은 아무 생각도 없을 텐데도.”

“…예? 거짓말이라뇨. 무슨 일 있었습니까?”

눈물을 닦던 소매끝을 거두며, 담영은 그제서야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 목숨을 끊은 사람이, 자네가 그리 믿고 따르는 생도장 서윤구가 가장 믿고 따르던 사람이자 직전 생도장이었으니까.”

“….”

“서 생도는 아직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네. 나아질 때까지는 다른 이가 보조해 주기로 했고.”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이제와서 들은 것과 죄책감이 무슨 상관인지 담영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 일을 굳이 숨길 것까지 있는가. 그러면 그런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가 문제인지 이해할 수 없나 보구만. 그렇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자네한텐 이 방법이 최선일 것 같네.”

“….”

“그럴 리는 없지만 서 생도가 갑자기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명을 다한다고 생각해 보게. 그 상황에서 어떤 이상한 녀석이 내게 와서 순진한 표정으로 자신을 그 자리에 넣어 달라고 청하여 입속했는데, 그걸 말하지 않은 채 서 생도를 따르던 자네한테 와서 치근덕댄다고.”

“예? 하지만 저는…. 지금 규빈이 형님 댁에서 숙식하고 있는데…. 그러면 그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식이 한소리 하려고 숨을 들이키다, 포기한 듯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제 눈앞의 이 녀석은 원래 그런 놈이었지.

“…그런 건 해결되었다고 치게 좀. 그걸 왜 나한테 묻나?”

“…그렇다면 그런 걸로….”

“그래. 하여간에 그런 일이 있다면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배신감을 느끼지 않겠냐는 거지. 방금 자네가 느낀 게 서 생도의 입장일 거고….”

“…배신감…. 그럴까요?”

예상치 못한 답에 정식은 포기했는지 한참을 그대로 서 있다가, 무언가 떠올린 듯 담영을 한 번 더 불렀다.

“이 생도.”

처음 정식이 담영을 부를 때와 똑같은 말투였다.

“자네의 출신에 관해서는, 사조단자4를 받은 것이 나이니, 내 모르는 것이 아닐세. 그래서 내가 자넬 이렇게 차갑게 대하다가, 나중엔 어쩌면 높은 어른들과 척을 지게 되는 것 아닐까. 뭐 그렇게도 생각하네.”

“…그런 일로 아버지를 다시 뵐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런 자네 성정을 아니까 더 모질게 구는 것도 있었다만, 하여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네. 주제넘을지도 모르나, 사실 자네는 사서를 더 읽었으면 하네.”

“….”

“집으로 돌아가란 말은 내 하지 않겠네. 지금까지 집에서 십여 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사서를 읽었겠지. 그러나 솔직히 와닿는 것은 없었지?”

정식이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이 담영을 제외한 다른 생도들이 알고 있는, 정식 특유의 부드러운 말투였다. 그러나 담영 입장에서는, 정식에게서 들은 말 중 이리도 다정한 말은 처음이었다. 너무도 다정한 말투에,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흐를 정도였다.

병약한 몸으로 내내 혼자였던 탓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란, 전부 책으로만 접했다. 찾아와 주는 벗이 한둘 있긴 했지만, 전부 자신의 실력이나 부친의 지위를 알고 경계하기 바빴다. 결국 그에게 책 속에서의 효제니 충서니 하는 것들은, 책 안에서의 전설에 불과했다.

“…그럴 줄 알았어. 아무래도 여기에서, 서 생도랑 같이 출입하며 남들과 똑같이 생도 생활은 계속하게 하는 것이 좋겠네. 대신 성표니 역산이니 하는 것을 익히는 부분에 대해선 급하게 생각 말고, 저녁에 돌아가서는 사서를 한 번이라도 복습해 보게. 이젠 와닿는 게 있을 테니까.”

“…시간 내서 복습하지 않아도, 그런 건 제 머릿속에 전부 있습니다.”

여기에서까지 사서를 굳이 보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는데, 정식은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그럼 오히려 잘된 일이야. 지금껏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사서의 내용이 떠오른 적이 없었나?”

일부러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담영이 생각하는 자신은 이제 성리학이니 유학이니 하는 것과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걸 의식적으로 떠올릴 리 만무했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 고개를 조금이라도 돌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그 책들은 언제나 꽂혀 있었다. 《천자문》이나 《소학》 같은 아주 낡은 책도, 《대학》 같은 최근까지 꺼내보았던 책도 있었다.

담영은 한참을 생각하다 부끄러운 듯 입을 열었다.

“…있,…었어야 합니다. 제가 애써 무시했지만.”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언행을 드러냈던 때가 생각났다. 처음으로 누군가와 같은 방을 써 보고, 처음으로 너댓 명이서 밤새도록 떠들어 보았다. 무의식 중에 ‘선현의 말씀이 이런 때를 두고 이른 거였구나’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는 이상하게도 토할 것 같은 불쾌한 감각을 느꼈고, 어느 날부턴가 의식적으로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그럼 이제는 무시하지 말게. 그리고 그 상황에서 다들 어떤 걸 느끼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표정이라도 봐. 처음엔 잘 안 될 텐데, 만약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르겠으면, 그땐 나에게라도 오게. 도울 테니까….”

정식의 마지막 말에 담영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서서히 눈빛이 밝아졌다.

“돕는다 하시면, ‘도를 전하고 선현이 이룬 학문을 가르쳐 의혹을 풀어준다’5 는 구절의 그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식이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스승을 말하는 것이었다. 기술관들끼리 전례에 맞추어 스승으로 대우하는 그 정도의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으로 받들 수 있는 참된 스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처음 담영이 정식을 찾아오던 날, 오로지 밤하늘의 별과 그의 눈만이 빛을 내던 날을 떠올렸다. 담영은 어느새 그 때의 그 표정으로 다시 돌아가 있었다. 정식은 그것이 내심 반가웠지만… 동시에 마음이 시렸다.

담영은 상상 속으로 들어가서 아주 조심스럽게 책들 위에 묻어 있던 거미줄을 걷어내었다. 오래 전에 반복해서 보았기에 꼬질꼬질해진 《논어》 한 질을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렸다. 책상 위에는 본래 《숭정역서》 의 한 면이 펼쳐져 있었는데, 정식에게 질문하려고 가지고 왔던 부분이었다. 그는 두 편의 서로 다른 책을 겹겹이 쌓아올렸다.

정식 역시 과거를 되짚었다. 그간 풀리지 않았던 담영과의 꼬이고 묶인 불편한 관계의 끝부분을 찾아 뽑아내었다. 아직 열 다섯밖에 안 된 아이였다. 설령 그 아이의 출신이 조금 높은 위치에 있더라도, 이미 관례를 치른 이후의 복식을 하고 다니더라도, 타고난 성정 탓에 갑갑함을 느꼈더라도, 편히 의지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어른인 자신의 책임이었다.

“3년 전, 과거를 앞둔 시점에 갑작스럽게 입속해서 모든 생도를 제낀 다음 장원을 한 아이가 있었네. 서 생도가 따랐던 생도도 그 아이 때문에 순위가 밀려 본시험에서 낙방하고, 결국 죽음에까지 이른 게지.”

“…그랬습니까.”

“그때 그 아이를 천거한 사람이 나였네. 그러니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네.”

“….”

“그 생각을 덜려고 아무 관계 없는 자네에게 잘못을 덮어씌우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군. 또다시 자네 같은 사람을 과거 보기 직전에 입속시킨다 하며, 그때와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으니….”

“…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 두려우셨던 걸까요.”

“…그렇지.”

담영이 고개를 숙였다. 진심어린 사과의 표시였다.

“…죄송합니다. 저라면….”

…그리 말하고는 눈길을 피했다. 정식은 그의 다음 말을 얼른 알아채고선, 모르는 척 재촉했다.

“자네라면?”

“…안 받았을 것 같아서요. 저같은 사람….”

그 말에 정식이 빙긋이 웃었다.

“방금 처음으로, 자넬 받아 주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네. 그러니 이젠 사과할 필요 없네.”

XXX

자공이 말하였다.

“저는 남이 저에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일을 저 또한 남에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加諸人].”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주자>가 생각하건대 '무가저인(無加諸人)'의 무(無)는 자연히 그러한 것이요, '물시어인(勿施於人)'의 물(勿)은 <의식적으로> 금하는 말이니, 이것이 인(仁)과 서(恕)의 구별이 되는 것이다.

《논어집주》, 공야장 11.

  1. 이진수의 자 ↩︎

  2. 서윤구의 자 ↩︎

  3. 이도을의 자 ↩︎

  4. 四祖單子. 녹명단자(錄名單子) 라고도 한다. 과거 시험 전에 응시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근거 자료로 제출하였다. 응시자의 직역과 성명·본관·거주지, 부·조부·증조부의 직역과 이름, 외조부의 직역과 성명·본관 등을 기록하였다. ↩︎

  5. 한유의 사설. 원문은 師者所以傳道受業解惑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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