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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면담

CW: 당대에 팽배했던 퀴어 혐오적 맥락을 그대로 서술한 내용과, 기방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성자는 퀴어 혐오와 성착취에 반대하며, 이하의 내용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른 저녁, 연한 홍색 관복1을 미처 갈아입지 못한 두 사람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높은 담장에 으리으리한 기와 지붕, 그리고 귀를 쉬이 잡아끄는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는 곳은 아니었으나2, 안쪽으로 한 발짝만 들어가도 높은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는 기방이란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는 곳이었다. 수많은 손님 중에서도 특히나 높으신 분들이었는지,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의 인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한 사람이 앞 사람에게 겨우 끌려 가는 모양새였다. 앞 사람은 이곳에 오는 게 처음이 아니었는지 비교적 당당한 표정에 거칠 것 없는 걸음이었는데, 뒷 사람은 잔뜩 긴장하여 얼굴을 가린 채 두리번거리는데다 불안한 걸음걸이가 느껴졌다.

두 사람이 맨 안쪽 방문 앞에 다다르자,

“앗 이게 누구셔, 영상 대감 아니십니까? 이젠 숨길 생각도 없으신 거지요, 이러시면 저희도 조금 곤란합니다?”

…하고 기녀들 중 가장 서열이 높아 보이는 이가 찾아와 말을 걸었다.

“…오늘은 그런 게 아니네. 이 친구와 간단히 이야기를 좀 하러 왔으니 오늘은 아무도 들이지 말게. 대신 값은 충분히 쳐 주겠네.”

“어머, 그러고 보니 두 분이 무슨 사이이십니까? 손도 꼭 잡고 오시고.”

“그런 거 아니네.”

영상 대감이라 불린 이, 그러니까 영의정부사 김이현은, 급한 일이 있는지 농담을 농담으로 받지도 못한 채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의 상대, 병조판서 이계원은 또한 다급하게 이현의 손을 놓고 따라 들어가 이현의 맞은편에 쭈그려 앉았다. 가시방석이라는 말을 구체화하면 꼭 이런 느낌일 것이었다.

“자네가 하도 이런 곳을 싫어하기에 여인들을 전부 물린다는 것이, 괜한 오해를 사게 되었구만.”

“그러게 굳이 이런 곳까지 끌고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름지기 나랏일은 집안에서 의논하고, 집안일은 기방에서 의논해야지.”

“헛소리 마십시오.”

“참 그 말버릇 좀 어떻게 안 되는가.”

그리고는 여유 있는 동작으로 술잔을 들고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잠시 멈추어 있다가, 곧 이 방에 아랫사람이라 할 만한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선 한숨을 쉬며 직접 술병을 들었다.

“앗, 대감, 그 정도는 제가.”

“…아니아니, 기방에서 사내가 따라 주는 술을 마신다는 게 더 이상해서 그러네.”

“아까부터 왜 그런 헛소리십니까. 그럴 거면 저희 집으로 가자니까요.”

계원은 잔뜩 질린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럼 대감 옷고름도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

“후후. 농이 늘었군. 다행이야. 그리 혼란스러운 상황은 아닌 게지.”

“공사를 구분할 정도의 정신머리는 있습니다.”

“그런가? 그럴 만한 사람이 아까 서운관에 가서 그 꼴을 내고 왔는가?”

이현이 날카롭게 물었다. 계원은 아차 싶었는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

“담영이 거기 있다는 것 말일세, 알고 나서 괜히 들쑤시지 말라고 일부러 늦게 알려준 것인데. 결국 이리 되었으니 어쩔 수 있나.”

“…역시 대감께선 알고 계셨군요.”

“서운관 역시 내 소관이니 당연히 알지. 아무튼, 오늘 일이 자네 안사람이나 다른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면, 도로 집으로 가고.”

계원이 한숨을 쉬며 조용히 답했다.

“당연히 부끄럽습니다마는, 어차피 오늘 일은 하루 정도 지나면 여기저기 퍼질 것이 아닙니까….”

“허허 이보게, 만인지상 일인지하3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그 정도야 이미 내 선에서 막아 두었단 뜻이네.”

“아 제발…! 아랫사람들의 사생활을 존중하십시오, 명하기 전에 생각을 하십시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4 아닙니까?”

쏟아지는 타박에 이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이거 자네 일일세? 자네한테 도움이 되라고 일부러 한 일이야?”

“아니요, 오늘 일은…, 결과가 어찌되든 달게 받아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계원은 꽤 조심스러웠다. 평소 그런 구분은 잘 하고 있다 생각해 왔는데도, 이날은 이상하게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다. 제 자식 앞일이 걸렸다 생각하니 아무것도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생각하는 알맞은 궤도에 담영을 올려 두고 싶었다. 각득기소(各得其所)5라 했던가.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 담영이 있을 곳은 서운관이 아니다. 그리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니 이제야 청합니다. 그 아이를 음양과 입격자 명단에서 빼 주십시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라 권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저는….”

“…으응, 그건 어렵구만.”

그리 답하며 이현이 망건 아래로 삐져나온 잔머리를 연신 귀 뒤로 넘겼다.

“…예?”

“아쉽게도, 이미 그 아이로부터 정반대의 부탁을 받았거든. 그것도 한참 전에 말이네.”

계원은 황당하단 말투로 거듭 부탁했다.

“지금 누가 먼저인 게 중합니까. 그저 두 사람에게 있어서 더 도움이 되는 것이 어느 쪽인지 생각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더더욱 어렵네.”

계원의 말에 이현은 드디어 마음을 정한 듯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내가 그 녀석을 어릴 적부터 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건 느꼈지. 바깥세상을 갈망하는 영혼을 너무 한 방에 가두어 둔 것이 아닌가.”

“…요는 제 탓이란 거군요.”

“뭐…. 다른 아이들처럼 길렀어도 이렇게 되긴 되었을 거니 괘념치 말게.”

“….”

“의외로 그 바깥세상이란 걸 한 번도 경험한 적 없기에 타격이 적었을지도 모르고….”

“….”

이현의 말들은 계원에게 심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내심 의심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도 제대로 찔러 준 적 없는 고름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 그렇지, 자네아까, 서운관을 끝장내러 갔을 때 말이야. 그 애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는가?”

그리고 그것을 대충은 눈치챈 이현이 술잔을 홀짝이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혼자 따른 술이었다. 계원은 다른 쪽을 멍하니 바라볼 뿐 답이 없었다. 답이 없으니, 결국 이현이 대신 답해야 했다.

“안색이 많이 폈지 않았나? 표정도 생겼지, 키도 좀 자란 듯하고….”

“…예. 확실히 그래 보여서, 그 이야기는 해 주었습니다만….”

“자네 잘못을 굳이 꼽자면, 이쪽이 문제였을지도 모르네.”

“아….”

이현이 빙그레 웃었다.

“하하, 미안. 이 역시 신경쓰라고 한 말은 아니야. 왜냐면 담영이 지금 함께 지내고 있는 친우, 부친이 한양 제일 가는 의원이라고 하네. 딱히 관에 소속되어 있진 않은 것 같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계원이 놀란 기색을 보였는데,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어 보였다.

“그, 그분이 누구입니까? 제가 아는 분일지도 모릅니다…. 거처라도 알려 주시면.”

“오, 안면이라도 있나?”

이현은 그 언동마저 꾸며낸 표정에 마음에 없는 말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무리 제 앞에 있는 이가 순진한 편이라 해도, 그리고 영의정부사의 직감이 저 표정은 거짓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기는 해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확실치는 않지만요.”

“그렇다면, 지금은 그들의 거처를 알려줄 수 없네. 아는 사람이라 확신하기도 어려운데다가, 사가라면 찾아가서 면박 주기 더 쉬울 테니까. 아무리 아비라고 하나 불쑥 찾아가서 압박을 주는 거, 그거 애 건강에 안 좋네.”

“아, 대감. 정말…!”

말하자면 이 때문이었다. 오늘 계원이 관상감에 찾아간 일을 보면, 담영의 거처를 알게 되었을 때 그러지 않을 가능성은 꽤 낮았다. 평소의 계원이 아무리 공사 구분은 철저히 하는 편이라 하여도, 사적으로는 자기 자식, 특히 담영이 걸려 있으면 이성을 잃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아무튼 정리하자면, 병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다, 본인이 정말 원하는 걸 하면서 살 수 있지, 당쟁에 휘말릴 필요도 없지, 선비의 규율에 대한 압박도 적어질 터인데, 평소 그 애의 인생을 ‘짧은 삶’ 이라 정의하면서 어찌 그런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가?”

“….”

“담영은 분명 총명하기는 하지, 그러나 그 아이에게 대과를 보게 하면, 이름을 날리기까지의 시간이 충분하다고 보았는가? 재상이나 당상의 작급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는가? 아니다, 이른 시기에 관례를 치르게 한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지….”

“윽…”

“그렇다면, 그건 욕심이야. 세종조에 남계영6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또…. 그 이야기는 정말 제가 집안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하셨습니다. 오늘도 거르지 않으시는군요.”

계원이 이현의 말을 막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제 잔에 술을 따랐다. 이현이 언급한 남계영이라는 사람, 그 사람은 이른 나이에 대과에 장원으로 급제해서 꽤나 선망을 받았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말이 좋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평안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

“….”

둘은 말없이 잔을 비웠다. 서로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이면 좋겠다고 이현은 생각했다.

“다들 잊고 있는 것이, 우리는 다들 세상에 나기 전에는 어떤 신분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네. 물론 한치 앞도 말이지. 예를 들어 서얼에게 난데없이 관직에 나설 기회를 주겠다고 달콤한 말로 현혹한다면 그것부터도 꺼림칙한 일일 텐데, 하물며 양반의 적장자로 태어났다고 별 동의 없이 제 인생이 미리 결정되고 강요당하는 것은 무슨 심정인가 하는 말이지. 아, 이렇게 말하면 저 바깥에서 온갖 당파들이 달려들어서 논쟁을 펼치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러니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 뭐 부모가 신분을 물려주지, 인의예지마저 물려주던가? 내 자식이라도 무항산이 무항심7인 자는 관직에 나가게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어찌 보면 중언부언일지도 모르는…. 그런 말을 듣고 계원은 멍하니 생각했다. 자신에 대해서, 담영에 대해서, 그리고 이현이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

“차마 전부 옳다고는 못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일단은 알겠습니다. 제가 배워온 바의 학문을 잇기를 바랐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그 애가 안전하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함께 등청하고 퇴청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러지 않았을 때에야 그 애가 건강하다면 다 괜찮습니다. 적어도 자주 보기라도 하고 싶지만….”

계원은 제 눈이 따뜻하고 반투명한 액체로 한 꺼풀 덮이는 것을 인식했다. 그대로 눈을 감으니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렀다.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 괜찮습니다.”

그러는 계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이현은 상을 옆으로 물리고 계원의 등을 토닥였다.

“…이제야 담영의 근황을 오늘에서야 전했던 의중을 파악해 주는군….”

그래도 자신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납득한 것 같았다. 단순히 겪어 온 삶을 나열해 보면, 둘의 삶은 유사해 보이면서도 달랐다. 선택지인 척 내려진 명령을 탐탁치 않아 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하고 고분고분 따라온 이현이나, 자신의 운명이 당연한 것인 줄 믿고 그대로 걸어온 계원은 전혀 달랐다. 어쨌든 이현에게는 후회라는 것이 있었다. 계원 역시 운명의 뒷편이 사실 선택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언젠가 깨닫는다면, 뒤늦게 후회가 밀려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래야만 담영은 편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쨌든 담영이 살고 있는 세계는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사서삼경에서 이르는 바를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세계였으니 말이다. 담영이 15세 생일을 전후하여 집을 나왔던 것은 자기가 끝내는 부친의 손에서 죽게 될까8 하는 두려움이었으며, 부친의 뜻을 따를 수 없었던 것9은 그의 소망을 전부 이루어 주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이내 자신이 좋아했고, 계원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는 다른 일을 찾았다. 그렇게 정한 다른 일이었음에도, 그가 본격적인 관상감 관원이 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바랐던 것은 결국 부친의 인정이었다. 그 상황은 담영 본인은 전혀 모르는 무의식의 세계일 뿐이었으나, 이현은 어째서인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서운관이 더 이상 그 아이에게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면 참지 않을 것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절대로 하늘이 그의 목숨을 빼앗도록 두지 않습니다.”

“오…. 방금 꽤 위험한 발언이었는데.”

“…그게,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빗대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계원이 답지 않게 볼멘소리를 하였다. 남이 보기엔 꽤 연배가 있는 중년이었지만, 그것 또한 제 눈에는 나름 귀여웠는지 이현은 쿡쿡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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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말씀하시는 것이 대감 스스로의 이야기같은데, 맞습니까?”

“아이고, 들켰구만. 내가 어디까지 말했는가?”

이른 새벽, 마지막 술잔을 비운 계원이 이현에게 물었다. 이현의 눈동자가 잠깐 우왕좌왕하더니 계원의 다음 말에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하고 싶었던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이현이 모기만한 목소리로 답했다.

“…진정으로 연모하는 여인과의 혼인이려나.”

“….”

“….”

두 사람은 한참 침묵을 지켰다. 오랜 침묵을 깨듯, 계원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렇게 기방을 들락날락하시는 거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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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조대 당상관 관복. ↩︎

  2. 당시에는 국법으로 소박한 삶을 지향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글쎄요, 기방도 예외는 아니었겠죠. ↩︎

  3. 만 백성들의 위에 있으며 단 한 명 왕 아래에 있는, 영의정을 일컫습니다. ↩︎

  4. 리눅스 운영체제에서 sudo를 처음으로 사용할 때 표시되는 메시지입니다. ↩︎

  5.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유교에서의 개념입니다. ↩︎

  6. 실존 인물입니다. 1427년 과거에 장원급제한, 1415년생 인물. ↩︎

  7. ⟪맹자⟫ 원문은 유항산 유항심. 일정한 자산이 있어야 일정한, 그리고 올바른 마음이 생긴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백성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사(士)의 경우에는 일정한 자산이 없더라도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에서는, 일정한 자산이 없으면 올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하는데, 아무리 양반 출신이라도 위정자로서 기능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

  8. 현대어로 번역하자면, 이대로는 죽겠다! 라는 의미입니다. 먼저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뻔한 일이 있었을 때를 빗댄 것으로, 자신이 부친의 손에 죽으면 부친이 자식을 죽인 살인자가 되는데 이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쳐야 한다는 것이며, 두번째로는 부친보다 먼저 죽으니 어찌 불효가 아니겠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

  9. 본래는 부모 사후 3년 동안까지는 그의 뜻을 고치지 않아야 군자라 할 수 있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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